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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대하여 운영자 2023-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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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욥기1:6-12절 개역개정

6.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7.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9.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10.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11.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1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1. 오늘 본문과 관련된 질문은 다음과 같다.

QT/ “욥의 고통은 그가 의로운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혹은 의로운 사람이기 때문에 시작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우리에게 고통에 관하여 어떠한 통찰을 줄 수 있을까요?”

 

2. 오늘 본문은 천상 회의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1절을 보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 앞에 모였다.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천사들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속에 사탄이 끼어들어 왔다. 사탄은 한때는 하나님을 섬기는 천사였는데, 타락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내어쫓김을 당한 자이다. 그런데 그가 천사들 속에 끼어들어 온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을 향하여 욥에 대한 뿌듯한 심정을 드러내셨다.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그러자 사탄이 이의를 제기한다. 욥이 어찌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겠습니까? 다 오는 것이 있으니 그렇지요! 사탄은 욥의 신앙을 주고 받기식, give & take , 이해타산적인 것이라고 중상한다. 그러니 만일 하나님이 욥의 재산을 가져가시면 욥은 더 이상 하나님을 섬기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욥은 큰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평생 모은 재산 다 없어지고, 자녀들 다 죽고, 나중에는 자신의 몸조차 심한 종양으로 고통을 당해야 했다.

 

이런 욥기의 흐름을 살펴보면, 아니 어떻게 하나님과 사탄의 줄다리기에 인간이 그런 고통을 당할 수 있어? 이게 말이 돼? 라며 분노할 수도 있다. 이제까지 열심히 하나님을 섬긴 욥에게 어떻게 하나님께서 엄청난 고통을 허락하실 수 있어? 화가 날 수 있다. 그러면 이제 오늘 본문을 계기로 고통에 살펴보자

첫째로, 성경에서 고통은 일차적으로 범죄의 결과이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세상에 고통이 처음 들어왔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고통은 인간이 자기 한계를 깨닫지 못한 교만의 결과라는 욥의 친구들의 지적은 일면 타당하다. 그러나 그 틀을 그대로 욥의 고통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둘째, 고통은 하나님의 허용 안에서만 주어진다/ 사탄은 교만하고 참소하는 영이다. 그는 하나님과 그 자녀들을 갈라놓으려고 어떻게든 중상하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탄이 인간에게 제공할 고통에 한계를 그으신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사탄의 행동을 금지하실 수 있다. 하지만 잠시 유보하신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오는 고통을 하나님이 모르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시고, 다만 제한적으로 그 고통을 허락하신 것이다.

 

셋째, 고통에는 하나님의 뜻이 숨겨져 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사탄에게 잠시 허락한 것은 사실 심오한 뜻이 담겨져 있다. 그것은 더 큰 영적 통찰력을 욥이 갖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께서는 욥으로 하여금 자신이 인간임을 재확인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오직 구원자 되신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려는 계획를 가지고 계셨다.

 

3.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면, 종종 이런 푸념을 늘어놓을 수 있다. “아니 세상을 하나님이 다스리고,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인데 왜 세상에 악이 판을 치지?” “왜 악인이 잘 되고 선하게 살려는 자들은 더 어려움에 처하지?” 바로 이런 문제를 학문적으로 모색하는 것을 神正論’(Theodicy)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연구하여도 세상의 고통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자칫하면 욥의 친구들처럼 욥의 고통을 인과응보적인 틀 속에 넣어 욥이 뭔가 큰 죄를 숨겨 놓았으니 이런 고통을 겪는 것이라고 속단할 위험도 있다. 그러나 신정론은 책상에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악과 싸우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 안에 투신할 때 깨달아질 수 있는 것이다.

 

세상 만사 가장 위에, 바로 인간이 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가 놓여 있다. 우리가 자신의 고통, 타인의 고통을 바라볼 때, 오직 인과응보적인 틀로만 쉽사리 판단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뜻이 그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통당할 때, 우리는 더욱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한다.

 

또한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있어야 한다. 내가 힘들어도, 고통스러워도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반드시 승리에 이르게 될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무는 것이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누가 뭐래도~ 누가 뭐래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 시련과 고통을 이기시고 더욱 깊은 영적 지혜로 나아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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