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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이순태 202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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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누가복음2:25-35절 개역개정

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6.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33.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34.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1. 오늘날 문화의 특징 중 하나는 속도이다. 각종 분야에서 경쟁력은 속도와 연결되어 있다. 냉장고도 급속냉각을 할 수 있어야 팔린다. 휴대폰도 화면이 바로 나타나야 하고, 자료 다운 받는 것도 신속해야 매력을 가진다. 인스턴트 식품도 몇 분 안에 완성되어야 하고, 선거도 마감 시간과 동시에 출구조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어야 직성이 풀린다. 연애도 번개팅을 해야 하고, 복권도 즉석 복권을 사야 한다. 아이스크림도 핥아 먹다가 답답하여 베어 먹는다. 그러다보니 적지 않은 현대인들이 조급증에 걸린 양상이다. 스피드 시대에 기다림은 지루함과 초조함으로 다가오고, 어리석음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기다림은 곧잘 현대의 미덕에서 제외되곤 한다.

 

그러나 인생에서 기다림은 매우 중요하다. 반드시 기다림의 훈련이 필요하다. 인생에서 내가 계획한 대로 한 번에 되는 일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해리포터시리즈로 세계적인 갑부 작가가 된 조앤 롤링이 처음 해리포터를 출판하기 위해 출판상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12개 출판사로부터 거절을 당했다. 만일 그가 좌절하여 출판을 포기했다면 오늘날의 그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베토벤은 하나의 곡을 만들기 위해 최소한 12번 이상을 다시 썼다고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의 걸작 최후의 만찬8년 동안 무려 2천번이나 스케치를 하였다고 한다. 그런 것을 보면 명작은 기다림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경에는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성경은 언제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라고 말씀한다. 우리 생각으로는 즉각 시원스럽게 약속을 이뤄주시면 좋으련만 하나님께서는 기다림을 주신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아들을 얻기까지 25년을 기다려야 했다. 모세는 쓰임받기 위하여 80년이 소요되었다. 요셉은 노예로 팔리면서 애굽의 총리가 되기까지 13년이 걸렸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역사를 이루시기 전에 먼저 기다림을 주신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기다림을 거치면서 성숙해지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었다.

 

만사에는 다 하나님의 때가 있다. 심을 때가 있으면 거둘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다. 울 때가 있으면 웃을 때가 있다. 기도할 때가 있고 기도에 응답받을 때가 있다. 결국 만사는 다 기다림 속에서 이뤄진다. 그렇게 보면 기다림은 삶의 버팀목이요, 신앙의 핵심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구약성경은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책이다. 신약성경은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책이다. 그런 점에서 성경은 기다림의 책이라 할 수 있다.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은 내가 속히 오겠다는 약속과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아람어로 마라나타)라는 기다림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그런데 신앙에 있어서 기다림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누가, 무엇을,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사무엘 베케트가 쓴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작품이다. 주인공 에스트라공블라디미르고도라는 존재를 기다린다. 그런데 그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언제 어디서 그를 만나야 할지도 모른다. 희곡 전체는 두 사람이 기다리는 것으로 시작해서 여전히 기다리는 것으로 끝난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다. 그야말로 목적도 없고, 목적을 향한 어떤 계획이나 진전도 없다. 두 사람의 시간은 초점 없이 흘러간다. 이 책은 부조리투성이인 우리 인생을 우화적으로 그리고 있다.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자신도 잘 모른다. 그저 길을 잃고 사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기다리는 것의 정체도 모르고, 그것이 올 것이라는 확신도 없다. 그러다보니 기다림의 의미도 상실되고 시간만 무심하게 흘러간다. 이것이 남의 이야기일까? 우리는 어려서부터 여러 목표들을 가지고 산다. 좋은 학교를 목표로 공부하고, 좋은 직장 들어가 승진하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좋은 배우자 만나기를 고대하고, 아이들이 성공하도록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를 한다. 그런데 이런저런 목표들이 사라지고 나면, 궁극적으로 우리가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되묻게 된다. 열심히 인생 살아왔다. 그러나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막연하게,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모습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의 기다림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2. 우리는 누가복음 2:25절 이하에서 한 기다림의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시므온이라는 노인이다. 우리는 시므온을 통해서 신앙적인 기다림의 모습을 배울 수 있는데, 이를 위해 우리는 몇 개의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첫째, 누가 기다리는가?

누가복음 2:25절은 시므온에 대해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시므온은 예루살렘에서 살았다.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은 그리 살기 좋은 도시는 아니었다. 특별히 농사 지을 땅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산업이 많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기근이라도 날 양이면 돈 없는 사람들은 큰 고생을 감수해야 했다. 이처럼 살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시므온은 기다렸다.

 

또한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다. 죄가 만연된 곳에서 의롭게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이 자기와 같은 수준이기를 바란다. 그래서 자신이 불의할 때 다른 사람들도 끌어당겨 함께 죄를 짓게 하려고 한다. 그런데도 시므온은 세상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을 고수하며 살았다. 세상의 쾌락에 빠지게 하는 유혹이 곳곳에 있지만, 그는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리고, 그분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을 첫 번째 과제로 삼았다.

 

이 세상에서 안주하고 땅의 보장을 받는 자에게는 기다림이란 없다. 그런 자에게는 오히려 기존 세상이 뒤집어지고 새 세상 오는 것이 오히려 두려운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이런 변화를 기다렸다. 요한계시록의 표현을 빌자면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기도이다. 이것을 아람어로는 마라나타라고 하는데, 초대 교인들은 날마다 이를 외치면서 기다림의 삶을 살았다. 즉 시므온의 기다림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교회 모두의 기다림이었다. 불의에 의해 고통받는 자들, 불의한 것을 보고 견딜 수 없는 자들의 기다림이었다.

 

둘째, 무엇을 기다리는가?

시므온은 누가복음 2:25절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위로와 그 위로를 가져다 주실 그리스도를 기다렸다. 이런 기다림은 예수님이 태어나기 오래 전부터 경건한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것이었다. 시므온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성령의 계시를 받았다. 그것은 그가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이었다. 그는 그리스도를 본 적도 없고 어떤 형태로 나타나실지 전혀 모르지만, 그래도 그가 기다려야 할 분은 그리스도요, 그분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위로를 받을 것임을 믿고 기다렸다. 그런데 시므온에게 있어서 위로란 단지 심리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회복이다. 하나님이 보내시는 메시아가 왕이 되어 다스리는 나라의 회복이다. 유대인들은 수백 년 동안 나라를 잃고 세계 각지로 흩어지면서, 억눌림 당한만큼,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더욱 바라며 기다렸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왜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렸는가? 단순히 그리움 때문이 아니었다. 옛것에 대한 감상적인 기다림도 아니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린 것은 그분의 오심이 낡은 것에 대한 심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불의한 권력, 그리고 권력을 등에 업고 돈을 벌고 사람의 목숨까지도 파는 상인들(18:3)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주권이 지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를 기다렸다. 곧 하나님의 나라이다.

 

셋째, 어떻게 기다리는가?

내가 속히 오겠다라는 직설법적인 약속은 언제나 삶의 방식에 대한 명령법을 수반한다. ‘죽도록 충성하라’(2:10), ‘흰 옷을 입으라’(3:18). 그리스도인들의 기다림은 막연하게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주신 명령을 준행하면서 현재를 사는 것이다. 이것이 기다림의 본질이다.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는 자는 방에 틀어박혀 눈물 흘리면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요한계시록에서 그리스도인은 신부에 비유되는데, 참으로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는 자신을 가꾸고 집안을 정리하면서 열심히 일을 하며 기다린다. 어떤 면에서 기다림은 깨어지고 부서지는 시간이다. 토기장이이신 하나님께서 진흙인 우리를 빚어 멋진 작품을 만드신다. 그 과정에서 진흙은 부서지고 깨어지는 고통을 경험한다. 그런 후에 영광의 날을 맞이하게 된다.

 

또한 기다림은 믿음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초조해지고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두려움이 생긴다. 그러므로 기다림에서 필요한 것은 매사에 긍정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신다! 나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크고 놀랍다!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시다!

 

3. 그런데 기다림을 묵상하면서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즉각 알아보고 찬양을 올렸다. 그런데 우리는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성경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자들은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부활의 첫 증인인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동산지기로 착각하였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 역시 처음에는 예수님을 그저 길벗으로만 생각했다. 다락방에 있던 제자들 역시 부활하신 주님을 제대로 영접하지 못했다. 그러자 주님은 그들에게 자신의 몸에 있는 상처의 흔적들, 사랑의 흔적들을 보임으로써 자신을 알리셨다. 우리가 주님의 존재를 사랑의 흔적으로 알게 된다면, 주님 역시 우리에게서 그런 흔적을 찾지 않으실까? 사도 바울은 자기 몸에 예수의 흔적이 있다고 말하였다(6:17). 그것은 주님으로 인해 당한 고난의 흔적, 사랑의 흔적이다. “기다리지 않아도 봄은 오지만, 기다리지 않고 맞이하는 봄은 봄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봄을 간절히 기다리면서 겨울을 보내는 사람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봄을 맞게 되는 사람은 봄을 맞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

 

시므온은 한 번도 예수님을 본 적이 없지만, 아기 예수님을 보자 마자 깜짝 놀라면서, 털컥 아기 예수를 안았다. 그리곤 성령의 감동으로 찬송을 하였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2:29-32). 시므온은 성령의 약속을 받고, 그 약속을 기다리며 살았다. 그리곤 마침내 메시아를 만나게 되었다. 메시아를 품에 안았느니 이제 그는 죽어도 여한이 없었다. 메시아를 만났으니 더 이상의 아쉬움이 없었다. 주님! 한 분만으로 족하다. 그것으로 평안히 눈을 감을 수 있었다. 우리의 기다림 역시 주님을 안는 것이다. 바로 그곳이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곳을 향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기회를 사랑의 기회로 삼으시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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