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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밤 깨어있는 분들에게
국명자 2013-03-20 추천 0 댓글 0 조회 820


이 밤 깨어있는 분들에게

 

국 명 자

 

불면으로 뒤척이다가 홀연 일어나서 머리 등을 켰습니다. 추석 달빛이 걸린 창호지 창 밖에선 풀벌레들의 심야 합창이 흐드러지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참깻 대 두드리던 어깨도 아프고 이것저것 가을걷이로 지친 몸은 단잠을 반가와할 것 같았는데 머릿속은 물론이고 몸 속 구석구석 모든 세포들까지 마알간 얼굴로 깨어나고 있었습니다.

 

곤한 몸을 돌아눕히는데 사무치도록 간절한 어떤 기척이 들리고 있었습니다.

 

식어내리는 밖은 칠흑 밤이었는데 무엇인가 끊임없이 달려오는 소리, 떠나는 소리, 은밀하고도 처연하게 움직이는 어떤 발자욱 소리가 내 온 감각의 마디마디를 깨워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그 장중한 낌새는 벽 모서리 베개 머리맡까지 밀려와서 내 가슴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모른 척 잠잘 수가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늘이 높아지고 나뭇잎들이 피곤한 기색을 들어내고 살갗이 서늘해지면서 시야가 투명하게 뚫리고 있어 두루 눈치채고 있었습니다만 지금 밖에선 놀랍고도 신비로운 사업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가을은 차갑게 식어내리고 있는 칠흑 밤 은밀한 중에 그렇게 본격적으로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새롭게 태어나는 것들은 밤에 달려오고 밤에 만들어지는 모양이었습니다.

 

 

생명이 오고 가는 것도 그러하고 아픔과 기쁨도 밤에 더 간절하며 밤을 새우지 않은 생각들은 깊지 않아서 세상을 움직이지 못하는 걸 우린 알고 있었습니다.

 

 

피곤한 생명들을 잠들게 하시고 그 손길을 더욱 바쁘게 움직이시는 여호와의 기척을 이 밤 귀 기울여 듣습니다. 천지 창조의 그 치밀하신 계획도 저 장중하고도 심오한 밤의 장막 안에서 이루어졌으리란 확신이 듭니다.

 

 

깨어있어야 할 시간입니다.

 

거기 그 어떤 변명도 끼어들 틈 없는 정직한 의식 한가운데에서 섬광처럼 보여지는 적나라한 내 모습도 보였습니다. 무장하고 위장하고 살던 밝은 날들의 내 부끄러운 모습이어서 얼굴을 붉혔습니다.

 

 

이 밤 서둘러 소등하고 가슴속의 심지만을 한껏 돋우고 안테나를 뽑아 올린 채 귀기울이시고 있을 당신들의 겸허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상상합니다.

 

 

 

당신의 간절한 기도가 하늘로 온전히 오르고 있을 귀한 시간입니다.

 

 

눈 씻고도 찾기 힘들던 용서와 사랑같은 아름다운 것들도 함께 달려오는지 창밖에선 소리 없는 함성이 지축을 흔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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