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의 창

  • 목회와 신학 >
  • 묵상의 창
춤을 추면서
국명자 2013-04-17 추천 0 댓글 0 조회 820


춤을 추면서 
                                                                                                 
 국 명 자

 

춤을 춥니다.

휘어져 내려온 손, 귀 뒤로 곱게 넘겨 께끼로 꺾고 종종체로 달려 나가 품 을 열어 한껏 하늘을 껴안습니다.

일주일에 이틀, 대학교육원의 널따란 고전무용 강의실에서 성실한 수강생이 되어 열심히 춤을 배우고 있습니다.

 

춤추러 가요

가끔은 길목에서 만난 지인들이 행선지를 물을 때에 이렇게 대답하고는 뒤돌아서면서 혼자 웃습니다. 대답 내용이 좀 우스꽝스럽기도 해서이지만 그보다는 그렇게 대답할 수 있는 화사한 사연을 가진 내 삶이 내심 기뻐서입니다. 인생의 끝머리에서 아름다운 춤을 출 수 있도록 허락받은 내 삶이 참 괜찮아 보여서 입니다.

실은 쭈글쭈글 늙어버린 두 손 내려놓고 마악 쉬려던 참이었습니다. 마음 속에 있는 말 한마디 사람들 앞에 선뜻 들어 내놓기 어려워했었고 팔 다리 움직이는 몸짓 같은 것들은 더더욱 엄두도 내지 못했던 부끄러움 많은 사람이었는데 낡아진 두 손 높이 들어올리고 숨기고만 싶었던 몸뚱이 맘껏 움직이며 춤추게 된 그 놀라운 기적이 어떻게 되어 내게로까지 온 것인지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춤의 짧은 기본동작들과 긴 기본동작들을 익힌 다음 여러 지방마다 춤사위가 색다른 아리랑을 익히고 매...죽과 태평무 태평성대도 익히고 수준이 높아져야만 출 수 있다는 살풀이와 어와 벗님네야도 익히고 기생춤인 교방무까지 떼었습니다. 진도는 쑤욱쑤욱 나가고 있었지만 가끔씩은 지금 내가 추고 있는 춤이 정말 춤인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평생 좋은 글 써보려고 뼈를 깎는 고통과 땀을 쏟아왔었던 터였습니다. 말로 글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쏟아놓은 말들이 모두 글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점이 글 쓰는 데에 함정이었습니다. 춤 역시 내 몸뚱이 가지고 장단과 가락에 춤사위만 맞춘다고 해서 결코 춤이 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춤 배우기 시작한 지 육 년째에 접어든 요즈음에서야 눈치채어가고 있었습니다.

 

창문을 연다’ ‘창문을 열었다

이리 간결하고 흠 없이 정다워 보이는 문장도 글의 첫 문장으로 끌어내기까지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어올 다음 문장들을 마음 편하게 열어주면서 이끌어주고 글의 마지막 문장까지 책임져줄 수 있어야하며 함께 올라와 있는 수많은 단어들의 조합과 배열 그들이 이뤄놓은 문장들에게서 흐르고 있을 격과 리듬과 향기까지 헤치지 않고 오히려 도울 수 있는 첫 문장의 결정은 찾아놓은 수많은 단어들과 미사여구로 분바른 근사한 문장들을 가차 없이 떼어내버릴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여러 밤 새우며 피 마르는 사투를 벌여야만 되는 일이었습니다.

 

춤 역시 그리 녹녹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춤은 춤추기 전부터 몸 위에 춤이 올라와 있어야하고 마음 안에 미리 춤이 들어와 있어야만 했습니다. 벌떡거리는 몸 구부려 엉덩이 높이 들어 올리고 두 팔로 출발 선 짚은 채, 출발신호 기다리는 육상선수들의 몸 안에 갇혀 있을 강렬한 열망과 에너지 같은 그 뜨거운 것들이 우아하고 유장한 한국춤 추려고 출발선에 조용하게 선 사람들의 몸과 마음 안에도 함께 올라와 있어야만 했습니다.

장단과 가락 울리기를 기다리며, 두 팔을 가슴과 등 뒤로 나누어 대기시키고 오른 발 날렵한 돋음새의 정지된 인체로 서 있을 때에 이미 춤은 몸 위에서 몸 안에서 깊게 높게 곱게 추어지고 있어야 되며 그래야만 눈매와 입매 순해지고 굴신 맡을 다리와 오금쟁이 부드러워지고 하늘 휘저어가를 팔목과 팔꿈치 편안해지고 허리와 어깨 위에 흥 올라오고 열 손가락 마디마디 표정 지어지며 가슴도 함께 뜨거워지면서 춤다운 춤이 시작되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요즈음은 까치체 발바치로 바닥 차며 나래체 멜체로 나아가고 휘돌아서면서 줄부채 활짝활짝 폈다 접고 어깨춤과 여러 화사한 몸짓들과 함께 부채춤을 배우고 있습니다.

 

겨드랑이 열어! 겨드랑이 열라고! 겨드랑이 안에 바람 넣으라고!”

………왼 손도 함께 춤 춰야지!”

춤 선생님은 힘주고 있는 우리들의 뻣뻣한 어깨와 오른 손 춤사위 익히는데에만 정신이 팔려 아무렇게나 뻗어 놓고 있는 반대편 손과 팔목과 다리를 지적하면서 겨드랑이 벌려 바람 넣고 온 몸 함께 춤추고 온 정신 흥 위에 함께 올려놓아야만 한다며 불호령을 내립니다.

 

그리고, 그리하여, 그랬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내가수다 떨 때 마구 함부로 내밷는 이런 흔한 단어들이 여러분들의 시와 수필 위에 올라와선 절대 안 됩니다. 주제 소재 아무리 좋아도 글이 격이 낮아지면서 아예 망쳐지고 맙니다.”

춤 선생님처럼 국어선생이었던 나도 수필 쓰려는 꿈 많은 여고 문학도들에게 이런 투의 많은 금기사항들을 단호하게 늘어놓았었던 생각이 납니다.

그러나 단호하게 지도했던 그 금기 사항이 꼭 맞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대 그리고 나

수다스럽기만 하고 영양가 없을 거라는 단어들이 조합되어 그 어떤 고급스럽고 화사한 단어들보다 감동과 감격과 여운 깊은 아름다운 시어가 되고 노랫말이 되어져 전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것을 보면서 단어보다는 단어를 선택하는 사람의 가슴 안에 담겨져 있는 혼과 격과 향기가 더더욱 중요한 것임을 지도 선생인 나부터 깨달아야만 했었습니다.

 

손목 하나 조용히 올려드는데도 처연하도록 아들다운 춤이 되고 감동이 되는 고수 춤꾼들의 춤을 보면서 깨달은 것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예술가들은 먼저 가슴 안을 알뜰하게 채워놓고 자신부터 감동으로 무장시켜야하는 모양이었습니다.

 

헐렁한 회색 셔쓰를 무대복으로 입고 나와서 격렬하게 팝핀춤을 추던 한 청년을 화면으로 보면서 많이 울었던 생각이 납니다. 그는 세월이 인생에 주는 절망감과 슬픔 그러나 견뎌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서러움을, 지상에서 가장 무겁고 무서운 주제가 되는 그것을 춤으로 보여주겠다고 하면서 가수 김정호의 세월이 가면이란 노래 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하였습니다.

어쨌든 결국 견디며 산다는 것은 저리 서러운 것이구나청년이 온몸으로 간절하게 보여주는 춤을 보면서 가슴을 치며 상당히 많이 울었던 생각이 납니다. 춤은 표현하여 전하여주는 데에 있어서는 결코 불가능이 없는 불가사의한 마력을 가진 아름다운 예술이었습니다.

 

당신의 춤이 깊어보여서 감동했습니다.”

초보 춤꾼이 받기에는 너무도 과분한 찬사였었는데 그러나 그 과분한 찬사 한마디는 춤을 더 사랑하게하며 더 열심히 춤추게 하는 촉진제 아니 내 삶 자체를 일으켜주는 위로제로는 그냥 최상이었습니다.

 

오늘도 성실하게 정직하게 더 겸손하게 춤을 추고 있습니다. 아주 열심히 춤을 추고 있습니다. ‘당신의 글이 깊어보여서 감동했습니다.’ 란 말도 듣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글 쓰듯 춤을 추고 춤추듯 글을 쓰면서 두루 감사해하며 행복해하며 살고 있습니다.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너 어디에 가느냐? 모삼기 2013.05.06 1 900
다음글 베드로의 그물 국명자 2013.01.13 0 892

55000 전북 전주시 완산구 현무3길 39 (경원동3가, 신광교회) TEL : 063-284-7548 지도보기

Copyright © 전주신광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