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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입신고 1
국명자 2014-10-25 추천 1 댓글 0 조회 987

전입신고

국 명 자

 

새벽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남편에게 마중나갈 시간입니다.

아침 차리던 물 묻은 손을 바삐 닦아내고 다듬지 못한 머리와 얼굴을 가려줄 모자를 깊이 눌러 쓴 채 아파트 공동 출입문을 따고 나갔습니다.

제일 먼저 만나지는 사람은 언제건 경비실 아저씨였습니다. 아저씨는 캄캄한 어둠속에서도 언제건 화안하게 불을 밝힌 채 반듯하게 집무태세를 갖추고 앉아 있었는데 그 모습이 산골짜기에서 마악 옮겨온 내 눈엔 매우 신선했고 신기해보였습니다.

몇 시부터 저리 일어나 앉아 계시는 걸까

지켜주고 보호해주기는 커녕 아무 것도 그 어떤 존재도 얼씬도 하지 않았던 오히려 피하고 싶은 산짐승들과 뱀과 쥐와 무수한 벌레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여기저기에서 무럭무럭 자라오르는 잡초들의 침범이 일상으로 이뤄지고 있었던 또 그런 것들이 좋아서 들어갔었던 산골짜기의 맨 앞 줄 집에서 장장 십육 년을 살았었습니다.

그렇게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시골사람 되어 살아온 내 눈엔 하늘 높이 치달아 오른 거대한 아파트단지의 안팎을 물샐 틈 없이 불철주야 지켜주고 보호해주고 도와주고 있는 제복의 경비 아저씨가 무한 믿음직스럽고 신기해보였습니다.

105702호로 내일 이사올 사람인데요

우리의 전입신고를 제일 먼저 건네어 드린 사람도 바로 그 아저씨에게였습니다. 생애 마지막이 될 가장 큰 결단을 내리고 새 마음으로 무장한 채 씩씩하게 탈출하여온 역사적인 우리의 출사표를 전했는데도 눈이 유난히 큰 그 아저씨는 별 말도 없었고 표정도 없었습니다.

……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제부터 우리의 남은 날 동안 우리의 뒷모습을 가장 가까운데서 지켜보면서 지켜줄 분이기에 간곡한 부탁을 드렸던 첫 번째 도시의 사람도 바로 아저씨였습니다.

 

사실 도시 아파트로의 이사는 금년 계획에도 아니 내년 그 다음 해에도 아예 없었던 갑작스러운 사건이었습니다. 평안하게 살아오던 어느 순간, 지금 사는 곳에서 하루라도 빨리 탈출하여야만 된다는 것을 갑작스럽게 깨닫게된 것이었습니다.

이미 극 고령으로 진입하고 있는 우리 부부가 남은 날 동안 최소한의 기본 생명권만이라도 보호받고 위로받으면서 조용하게 살아가려면 교회와 자식 그리고 친구들과도 가깝고 도움 받을 여러 시설들이 있는 익숙하고 친근했던 곳으로 하루라도 빨리 다시 돌아가야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건강했던 남편이 갑작스러운 심혈관 수술 후유증으로 힘들어하고 있는데다가 본래부터 허약했던 내 몸의 기력과 정신력에도 점차 수상쩍어지는 증세가 속속 나타나고 있던 터였습니다.

자식들 다 키워 내보내고 두 사람 생업도 대과 없이 끝내었으니 도시의 모든 기억들과 흔적들을 아낌없이 훌훌 털어내고 지워버리다시피 하면서, 감격해하며 들어갔었고 무한 더 감격해하며 행복하게 살았었던 아름다운 산골짜기는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길지 않을 남은 날들을 맡겨야만 될 그곳과는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는 외로운 곳이라는 것을 결국 알게된 것이었습니다.

 

아파트로 옮겨온 뒤부터 아침 운동을 끝내고 돌아오는 남편에게 반드시 첫 번째 꼭 묻는 말이 있었습니다.

오늘도 그 맨발의 청춘 만나셨어요? ”

먼저 남편의 걸음걸이와 몸 컨디션부터 살펴보는게 순서가 되겠지만 나는 맨발의 청년이 늘 더 궁금하였습니다.

응 나왔어

역시 인사를 먼저 하던가요

오늘은 걷고 있는데 뒤에서 인사를 건네왔어

뭐라고요

일찍 나오셨네요 하더라고

그 청년은 고맙게도 남편에게 만날 때마다 인사를 건네오는 모양이었고 짐작하건데 남편에게 지극한 호감과 존경을 보내오고 있는 게 분명해보였습니다.

아는 사람이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아파트가 지어진 이래 오 년이나 넘게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장에 나와 운동하셨다는 옆 701호 할아버지와 그 친구들이 맨발의 청년과 남편의 대화하는 모습에 기적의 사건이나 만난 것처럼 놀라움을 표시하며 남편에게 묻더랍니다.

청년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할아버지들과 함께 같은 운동장에서 오년 여 동안 맨발로 돌고 있었던 모양인데 지금까지 입을 한 번도 열지 않았던 침묵의 청년이었더랍니다.

유일하게 벗은 맨발로 운동장을 매일 한 시간여씩 열심히 성실하게 돌고 있던 청년에게 남편은 눈부셔하며 반했을 것이고 수줍은 남편이지만 경의를 표하는데에는 결코 인색함이 없는 남편이기에 아마도 용기 내어 먼저 말을 건네었을 것이었습니다.

대단하시네. 나는 여기 옆 H아파트로 마악 이사온 사람이라네. 보기에 참 대단하시네

짐작컨대 남편은 이렇게 말했을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나는 얼굴도 한 번 보지못한 청년의 안부를 남편에게 매일이다시피 묻게되었고 그 청년이 빠지는 날 없이 남편에게 건네어준다는 따뜻한 인사말은 내 가슴 안에까지도 더 큰 다사로움이 되어 흘러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다시는 보고싶지도 앉다는 듯이 버리고 떠났던 도시는 늙어서 힘없이 돌아와서 눈치보며 멈칫거리고 있던 우리에게 이렇게 따뜻하게 그 큰 품을 열어주기 시작하고 있었š뺨求?/SPAN>.

<적막>이 좋아서 무작정 달려들어갔었던 산골짜기에서 이젠 그 <적막>이 서러워진 나이가 되어서 부랴부랴 다시 뛰쳐나왔습니다. <수만리 통신>을 사랑해주시었던 분들에게 새벽 산책길에서 만난 두 아저씨와의 작은 이야기로 우선 첫 번째 전입신고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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