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신학

  • 홈 >
  • 목회와 신학 >
  • 말씀과 신학

 

말씀과 신학
도시 목회에 대하여 이순태 목사 2012-11-13
  • 추천 0
  • 댓글 0
  • 조회 1854

http://singwang.onmam.com/bbs/bbsView/9/111062


도시목회에 대하여

- 200728일 기장 목사후보생 특강 -

 

이순태 목사(전주신광교회)

 

도시목회에 대한 강의를 부탁받고 한동안 망설였다. 우선 두 가지의 의문이 생겼다. 도시가 무엇이지? 다른 하나는 어떤 것이 도시목회이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이번 강의에서 도시목회 뿐 아니라, 농촌목회, 민중목회, 개척교회 등의 범주가 다루어진다는 말씀을 들었다. 그렇다면 도시목회와 그들 간의 차별성은 무엇일까? 예전에 그저 두루뭉실하게 넘어갔던 도시목회라는 낱말이 새롭게 떠올랐다. 그런데 도시목회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면서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어떤 목회 유형을 개념화한다는 것은 자칫 추상화에 머물 우려가 많기 때문이다. ‘라는 범주 안을 들여다보면 큰 개, 작은 개, 털이 많이 개, 주둥이가 나온 개, 귀가 큰 개, 점이 많은 개 등 대단히 많은 종류들이 개라는 범주 안에 들어 있다. 이처럼 어떤 목회를 개념화한다는 것은 자칫 현실과의 만남을 어렵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제가 이번 여러분에게 하려는 강의는 어떤 이론을 전개하기 보다는 제가 도시목회에 대해 평소에 가지고 있던 신학적, 사회적 이해를 개략한 다음, 제가 지금 섬기고 있는 특정 교회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자 한다.

 

 

 

1. 도시를 바라보는 상반된 신학적 시각

 

도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이다!

쟈크 엘룰은 “The Technological Society”라는 저서에서 이런 말을 한다. “도시는 인간의 창작물이다. 문화 창조의 중심지는 도시이다.” 쟈크 엘룰에게서 도시는 인간이 자기 세계를 창조하는 곳인데, 인간이 죄인이기에 도시는 범죄가 넘치는 곳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시골을 더 사랑한다고 엘룰은 말한다.

 

도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선물이다!

이에 대해 하비 콕스는 다른 의견을 제사한다. 그에 의하면 도시의 창조자인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이기에 도시는 선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세속도시라는 책에서 역사적으로 지구상에 많은 문명들(86개의 문명)이 생겨났다가 망해 왔는데, 쇠망의 이유는 그 문명들이 절대화에 빠진 것이라고 진단한다. 즉 자연, 가치, 권력을 절대화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87번째 문명을 살고 있는데, 그게 세속도시라는 것, 그런데 도시의 특성은 자연과 가치와 권력을 상대화시키고 있기에, 도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독특한 구조라고 주장한다.

 

도시의 양면성

이처럼 도시에 대해 부정적, 긍정적 의견이 다 일리가 있지만 절반의 진실만을 이야기한다고 하비 콘은 말한다. 즉 도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선물을 가지고 놀라운 문화를 생성할 수 있는 곳이기에 좋은 곳이지만, 동시에 도시는 많은 죄가 있는 곳이다. 즉 도시에는 선과 악이 모두 있다. 도시에는 사탄이 일하고 있고, 동시에 하나님께서도 일하고 계신다. 농부가 곡식의 씨를 뿌렸는데, 악한 자가 와서 가라지를 뿌림으로써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게 되었다는 예수님의 비유는 도시의 양면성을 보여 준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도시를 복음화하기 원한다면, 선과 악의 소재지인 도시를 회피하지 말고 사랑해야 한다.

 

 

 

2. 도시라는 범주 안의 교회

 

그러면 도시교회가 들어 잇는 도시라는 사회학적인 특성을 간단히 살펴 보자

 

1) 도시가 지니는 특성들

 

익명성

도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기에 그들을 다 알 수는 없다. 서로를 아는데도 매우 피상적으로만 알게 된다. 이름은 모르고 얼굴만 안다든가, 이름을 안다 하더라도 너무 깊이 아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갖는다. 그러다보니 공동체성보다는 개인적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그러면서도 익명성이라는 특성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기에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주기도 한다.

 

유동성

우선 시골에 비해 유동성이 심하다. 도시 사람들은 시골에 비해 훨씬 이동을 자주 한다. 단순히 공간적인 이동 뿐 아니라, 농촌이라는 구조는 도시에 비해 전통적인 구조나 가치에 집착하는 경향이 훨씬 강하다. 과거에 이어져 온 가치관이나 농사 방법을 바꾸기가 참으로 어렵다. 그에 비해 도시는 변화에 좀 더 개방적이다. 도시는 보다 업무 지향적이고, 전문적이며, 전통적인 가치를 넘어 새롭고 창조적인 시도가 많다.

 

다양성

도시는 시골보다 자기가 현재 살고 있는 곳에 본래부터 뿌리를 두고 잇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또한 도시에는 시골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다양한 직업들이 존재한다. 학력의 차이도 다양하다.

 

권위주의의 해체

예전에 목사! 하면 나름대로 정형화된 그림을 그린다. 그러나 오늘날은 목사라고 해서 사람들마다 비슷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니다. 특히 도시에서는 이전에 목사! 하면 가지게 되었던 가치관이나 권위가 점차 해체되어 간다. 농촌 중심,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목사가 지닌 권위와, 오늘날 도시 사회에서 목사가 가지는 권위나 리더쉽의 패턴에는 큰 차이가 잇다.

 

2) 도시교회의 특성들

이러한 도시의 특성은 자연스레 도시교회의 특성으로 이어지게 된다.

 

구성원의 다양성

도시의 특성처럼 도시교회에는 오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 주일 예배를 1, 2, 3부로 드리는데, 각각 예배 참여자들의 연령층이나 직업이 상이하게 구별된다. 뿐만 아니라, 수요예배에는 특별히 강해 설교를 하는데, 그때만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밖에 교회를 초창기 설립 교인들과 후에 등록한 교인들 간의 미묘한 긴장(소외감)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연유로 인해 다양성을 수용하면서도 교회 내의 하나됨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하는 것이 목회의 중요한 과제가 된다.

 

공간적인 유동성이 심하다

참 이동이 심하다. 특히 제가 속한 전주는 이렇다 할 생산적 기업이 부족하다. 그래서 똑똑하다 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서울, 경기 지역으로 올라간다. 그런가하면 전주로 유입되어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다. 전주 주변에 있는 군소도시에서 유입되어 오는 자들이다. 그러다보니 예전처럼 정규적인 주일학교 프로그램을 통과하여 한 교회에 20-30년 머무는 패턴이 아니기에, 교회 내에 연령별 이음매가 튼실하지 못하다. 이런 점에서 도시교회의 회중은 잠정적이고 일시적이며 혼합적인 모습을 띤다. 그래서 도시교회는 늘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계속해서 숫자가 감퇴할 것이다. 그리고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어떻게 교회 내에 재빨리 정착하도록 하느냐 하는 것이 목회자의 과제로 남는다.

 

시간적인 압박이 심하다

도시교회의 세 번째 문제는 시간이다. 시골에서는 땅이라는 공간이 강조된다면, 도시에서는 시간이 중시된다. 도시의 사람들은 대체로 시간에 쫓긴다. 도시 설교자는 설교를 시간 스케줄에 딱 맞추어야 한다. 이런 시간적인 압박은 예배 준비에 큰 영향을 준다. 즉 예배는 잠시의 시간도 낭비하지 않도록 효율적으로 짜여져야 한다. 또한 도시에서는 어떤 봉사를 위한 시간의 틀도 짧아야 한다. 작은 읍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시간의 흐름속도가 비슷하다. 그래서 함께 모일 수 있는 시간대를 선정하기가 유리하다. 교회 예배시간도 좀 길어질 수 있고 기도회도 밤중까지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이것이 쉽지 않다.

 

거주지의 넓은 분포도

도시교회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네 번째의 문제는 거리이다. 시골 교회는 대체로 교회 주변에 산다. 그들은 일주일 내내 교제를 유지할 수 있다. 반면 도시교회에서는 사람들이 장거리 운전을 하며, 일부 프로그램을 통해서야 만날 수 있다. 그들의 만남은 대체로 주일에 국한되어 있다. (제가 섬기는 교회 주변에는 아파트가 없다. 그래서 더욱 주차장 필요; 교인들의 신속한 이동을 위해 차량 관리 중요)

 

취약한 공동체성

시골 교회는 우리 교회라는 공동체 의식이 매우 강하다. 교회를 비교하기 위해서 잠시 들리는 나그네 교인들이 거의 없다는 사실도 공동체성을 부추긴다. 그러나 도시 교회는 이곳 저곳 교회를 탐방하는 나그네 교인들이 적지 않다. 교회를 정하기 위해서 돌아다닌 자들, 이전에 몸 담던 교회에서 갈등이 있어 잠시 피난 온 자들, 특정 교회에 등록하는 것을 얽매인 것으로 생각하면서 등록하지 않고 나오는 사람들이 혼재되어 있어서, 그만큼 공동체성은 매우 약할 수밖에 없다. 결국 도시교회에서는 교회 일에 열성적으로 참석하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움직이게 된다. 여기서 목회자는 어떻게 공동체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구성원들이 지체 의식을 가지면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인가 하는 과제를 안게 한다.

 

 

 

3. 나의 목회의 방향

전주신광교회에 대한 간단한 소개 / 제가 몸 담고 있는 교회는 40년 된, 중소도시의 작은 교회이다. 전임 목사님이 은퇴하시고 후임으로 제가 들어가게 되었다. 8년 전 그 교회에서의 청빙이 확정되자, 주변에서 여러 권면들이 있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몇 가지의 구절이 있다. “노인들의 천국”, “부흥사들이 울고 가는 곳”(도대체 반응이 없어, 박수 노우! 통성기도 노우!) “강단에서 할렐루야 하면 집에 가서 아멘! 한다등등. 교회 주변에는 도시에 그 많던 아파트 하나도 없다. 교인들 대부분 차를 타고 온다. 쉽게 말해서 저희 교회가 있는 곳은 전주에서도 저물어가는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처음 그곳에 부임하여 각 신도회장들을 만났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청년부 회장을 부르니, 결혼한 집사님이 오는 것! ? 제가 몇 년 전에 청년부 회장이었다! 결국 청년부가 없어진 것(기존 목사님··· 발로 하시는 심방목회, 교육부분에 관심이 미흡), 청년부가 죽어 있으니, 교육부서가 죽었다. 부임한지 한 주 지난서 각 교육부장을 만났다. 그런데 10여 년간 어린이부장을 담당했던 장로님이 눈물을 흘리는 것! 우리 교인들이 자기들의 자녀나 손자들을 교회에 보내지 않는다는 것(대부분 아프트 근처에 잇는 교회로 자녀들을 보내다는 것). 그래서 어린이부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 중고등부 교사들은 5,60 나이를 넘긴 교우들이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중고등부 교육에 괴리감이 있었다. 심각한 문제! 교육부가 죽으면 교회의 맥이 끊기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처음에 이런 교회 상황을 놓고 우선 제일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교육부를 살리는 일이라 판단. 교육부를 위해 먼저 교사를 감당할 청년부 활성화를 최우선과제로! 여기서 제가 택한 방법은 말씀훈련과 찬양이었다. 제가 찬양사역에 익숙하지 못하기에 그것을 도울 부교역자를 선임했다.

 

예배 : 장르의 다양화, 찬양을 살려라.

말씀선포 / 주일 오전에는 주로 주제별로! 주일오후예배(오후3)는 주로 찬양을 중심으로 하는 예배로 드렸다(장년 중심의 찬양팀, 청년 중심의 찬양팀 구성··· 뜨거움. 뜨거움과 신앙의 건전함은 분리해서 생각할 주제이다. 그런데 뜨거움이 없을 때, 어떤 변화의 동력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수요일은 집중적인 강해설교로! 새벽예배는 큐티로!(교인들이 지역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기에 특별새벽기도 외에 이들을 동원하는 것이 여의치가 않았다. 그래서 어느 곳에 있어도 함께 동일한 말씀을 묵상할 수 있도록 큐티책을 활용하였다)

지금은 오후예배가 없다. 어느 정도 찬양이 교인들의 몸에 배어 있다고 판단해서, 주일예배를 1,2,3부로 하고, 오후 예배를 없애버렸다. 대신 각종 소그룹들이 자생적으로 생겨나서 주일 오후를 활용하도록 한다.

 

소그룹 활성화 : 교제와 양육의 장 - 팀사역 중심의 목회, 큐티나눔방

평신도사역 중심의 교회를 표방··· 버스기사형 목회자가 아니라! 이를 위해 소그룹의 활성화를 거듭 주장했다. 평신도 중심의 목회는 사실 개신교의 캐취프레이즈인 만인제사장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모든 평신도가 세상을 행하여 제사장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말씀을 제대로 알아야!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이 한 중요한 작업은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손쉽게 평신도들은 성경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후 18세기 이후 신학이 분석적이 되고 섬세화되어 가면서, 성경은 평신도에게 있지만, 그것에 대한 해석은 전문가에게 넘어갔다. 그러다보니 평신도의 역할은 전문가가 주는 해석에 아멘! 하고 먹는 수동적인 입장이 되고 말았다. 이것은 만인제사장직을 앞으로 받아들이면서 뒤로 밀어내는 결과! 그래서 평신도들로 하여금 스스로 말씀을 접하고 해석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큐티훈련을 구역장, 인도자들에게 시켜서 전 교인들에게 확산시키고 있다.

그래서 각자가 말씀을 접하고 적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과 더불어, 이것을 나눌 수 있는 나눔방, 그리고 그들이 구체적으로 사역을 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팀을 형성했다. (처음에는 위원회<위원장-12장로들>, 그리고 그 산하에 여러 팀들) 그러나 지금은 장로 역시 여러 팀장 중 하나! .... 예배사역팀, 성찬사역팀, 음향영상사역팀, 찬양사역팀, 워십댄싱사역팀, 국내선교사역팀, 해외선교사역팀, 전도사역팀, 심방사역팀, 새가족사역팀, 양육사역팀, 경조사역팀, 재정사역팀, 시설사역팀, 차량사역팀, 주방사역팀, 가정사역팀, 사랑나눔팀, 유치부팀, 어린부팀, 중고등부팀, 청년부팀, 가정사역팀, 새가족사역팀, 복지사역팀, 요가팀, 산악선교팀,

 

# 전주신광교회의 팀사역 방향

* 규티 자료를 가지고 나눔을 통해서 말씀훈련을 한다

* 팀장들은 팀원들과 더불어 큐티를 통해 말씀을 나누고 각 팀별로 한달에 한번씩 정례적인 모임을 통해서 각 부서들이 앞으로 자발적으로 해나가야 할 사역을 논의하고 기도한다.

 

평신도의 사역자화 : 말씀훈련, 리더쉽훈련

말씀을 큐티에게만 맡길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성경공부와 함께 날아야 한다. 그래서 기초반, 양육반, 사역반 훈련을 시도하고 있다. 이것은 사랑의 교회의 제자훈련 세미나, 새들백 교회의 시스템에서 귀한 도움을 얻었다.

 

심방 : 평신도들의 넓은 주거 분포, 만남의 장소 및 시간의 다양화

대체로 과거 대부분 목회방식은 발로 뛰는 심방목회였다. 이것에 익숙한 교인들은 심방목회를 벗어나서 말씀훈련 중심에 초점을 놓으려 할 때, 불평이 있었다. 젊은 목사님이 심방을 잘 하지 않는다...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보살펴야지, 당회장실에만 있는다.... 이것을 견디어야 한다. 제가 첫 번 담임하던 교회도 교인들 약 300명되는 도시교회였다. 그런데 이전에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심방중심! 그래서 심방도 일년에 두 번씩, 그리고 말씀훈련도 일주일에 너댓 팀을 이끌었다. 그 결과는? 2년째 되자 쓰러졌다. 모든 것을 다 커버하려는 목회자는 가슴에 S자를 달고 있어야 한다. 무엇? 수퍼맨? 노우! Stupid

결국 설교를 통한 말씀 선포, 소그룹을 통한 제자훈련을 지속적으로 밀고 나아가자, 지금은 목사님 심방 잘 안한다는 소리 사라졌다. 물론 지속적인 심방은 한다. 그런데 예전처럼 봄철에 몰아 부쳐 하는 심방은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다보면 피곤해서 말씀과 기도는 뒷전으로 밀려 나간다. 그래서 일주일에 하루 날 잡아서 한 구역씩 지속적으로 하는 편이다. 그러다 날씨가 더워지면 여름 넘기고 가을에 하고, 추워지면 추위 넘기고 봄에 한다.

한편 도시에서는 심방도 반드시 그 집을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목회자가 잠시 집에 들르는 것조차 부담스러워 하는 자들도 적지 않다. 항상 미리 전화로 알려야 하고, 때로는 집이 아니라, 가까운 레스토랑에서 만나 얘기를 나누고 기도를 하기도 한다.

 

전도 : 관계전도, 교회 이미지 고양, 방송선교

사실, 고백하건데 전도 얘기만 나오면 자신이 없다. 과거에 제가 부교역자로 있으면서 전도에 대한 구체적인 장을 접한 적도 없고, 나름대로 전도폭발훈련, 4영리 훈련을 받기는 했지만, 여전히 취약지구이다. 그래서 부교역자들과 제가 별도로 형성하여 매주 화요일에 정기적으로 모이는 전도·심방사역자들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제가 6년째 CBS 방송을 통해서 말씀을 선포하는데, 이것이 쾌 효과를 거둔다. 주일에 전혀 모르는 분들이 약 20-30명 정도 온다. 그들은 대체로 등록하지 않고 다니는 자들인데, 어떻게 오셨느냐고 물으면 많은 경우에 방송을 통해서 궁금해서 왔다는 것! 이들에게 절대로 등록을 강요하지 않는다. 하고 싶을 때 자진해서 하도록!

부활절, 성탄절을 통해 새가족 만남의 잔치를 마련하여 불신자들이 교회에 부담없이 올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추수감사절 오후에는 지역 경로당을 찾아 섬긴다.

 

기도의 활성화 : 신년특별새벽기도회, 중보기도팀 활성화(2)

화요기도회(여신도회에서 자체로), 금요기도회(8)

 

지역사회를 위한 개방 : 교회 문턱낮추기(노인복지를 지향하는 선교관 건립)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헌금을 모으고 잇다(부흥회는 안하고)

 

돌봄의 사역 : 개인적인 심리치료, 결손 가정의 돌봄

이혼자들도 교회에 적지 않다. 이들에 대한 특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지칫 대인기피증, 우울증, 죄책감으로 인해 교회를 떠나기도 한다. 특히 교회에서 재빨리 번지는 소문이 힘든 사람들을 교회 밖으로 내몬다. 이를 위해 여러 번 구역장, 인도자들을 대상으로 훈련을 시켰으며, 더 나아가 당사자들을 직접 내가 심리치료를 했다. 이를 위해 별도로 전문 기관을 찾아가 공부를 했다. 앞으로 교인들 중 이에 관한 은사가 있는 자들을 선택하여 교육을 시켜 상담사역팀을 만들려고 한다.

 

 

 

4. 복음의 본질에 깊게 서기

 

먼저 목회자가 바로 서야 한다.

얼마 되지 않은 목회 경험, 그 속에서 거듭 깨닫는 바는 목회자인 내가 먼저 복음의 본질에 깊게 서야 한다는 것이다. 규칙적으로 더 많이 기도하고, 말씀을 접해야 한다. 어떤 설교나 타인을 가르치려는 의도 없이 순수히 나와 주님과의 만남이 지속적으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무를 심으려면 먼저 땅부터 파야 한다. 오늘날 다양한 목회 기법에 관한 세미나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우선적인 것은 그런 기법보다는 목회자인 나 자신부터 땅을 갈아엎기 위해 땀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복음을 담는 그릇은 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변화에 따르는 속도도 교인들마다 각양각색이다. 천인이 천 마디, 만인이 만 마디 한다. 그들의 소리에 무관심할 수 없어 듣노라면 자신이 없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기억하는 권면이 잇다.

 

찰스 스펄젼 목사

목사후보생에게 하는 충고. “사람의 말을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항상 말을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방법은 여러분의 귀를 멈추게 하고, 들은 것을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하여 하시고자 하는 일들을 하십시오.” 뼈가 있는 충언이다. 말이 많은 곳이 교회이다. 목사가 옷을 잘 입으면 사치한다고 그런다/ 옷을 허름하게 입으면 교회 위신 떨어진다고 그런다. 목사가 밖으로 설교나 강의로 뛰면 교회 안돌본다고 그런다/ 그렇다고 교회 안에만 있으면 실력이 없으니 아무도 초청을 하지 않는다고 그런다. 자녀가 많으면 교회 부담된다고 그런다/ 그러나 자녀가 없으면 인간관계가 좋지 않겠다고 그런다. 그러니 먼저 하나님 음성부터 들으라!

딤후 2:15,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하나님이 인정하면 된다! 사람의 평가에 오르락 내리락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 앞에 정결한 모습으로 그분께만 인정받는 목회자들이 되기를 기도한다.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질문 이순태 2022.10.02 0 315
다음글 욥기서에 대하여 이순태 목사 2012.10.11 0 3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