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잔이 넘치나이다 | 운영자 | 2024-02-03 | |||
|
|||||
♥ “내 잔이 넘친다”라는 표현은 광야의 손접대에서 나온 말입니다. 햇빛이 내리쬐는 길을 며칠씩 걸어 친구 집에 도착하면, 친구는 발 씻을 물을 내어주고 식사와 음료를 대접합니다. 물이 귀한 곳에서 주인이 친구에게 줄 포도주 잔을 가득 채워주는 것은 내 집에 찾아온 손님에 대한 극진한 환대를 의미합니다. 똑같은 포도주 잔이 장소에 따라 기쁨의 잔이 될 수도 있고, 슬픔의 잔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잔치에서 포도주 잔은 기쁨의 잔이지만, 장례식에서는 슬픔의 잔이 됩니다. 유대인들은 장례식에서 포도주 잔을 받으면 ‘이 잔이 내 입에 쓰다’, ‘이 잔을 내게서 옮겨 달라’는 표현을 하면서 천천히 마십니다. 죽은 자를 보내는 유족들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슬픔의 잔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와 관련하여 예수님이 드리신 기도문을 당시 문화를 통해서 해석할 때 의미가 명료해집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의 마지막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철야기도를 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 ‘이 잔을 내게서 옮겨달라’는 기도는 자칫 ‘할 수만 있으면 십자가를지지 않고 회피하고 싶다’는 말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왜 예루살렘으로 오셨습니까? 십자가를 기꺼이 지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려진 예수님의 기도는 할 수만 있으면 십자가를 지고 싶지 않다는 절규가 아닙니다. “이 잔을 내게서 옮겨 달라”는 예수님의 표현은 성서 시대 유대인들이 장례식에서 쓰는 표현으로서 예수님도 이런 관습을 따르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장례에 참여한 유족의 슬픔을 나누는 것처럼 마음을 짓누르는 슬픔의 잔을 견딜 수 없다고 고백하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하신 기도문은 자칫 하나님이 왜 나를 이 지경까지 내버려두고 도와 주지 않느냐는 항변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유대인들의 문화를 알지 못하면 오해하기 쉽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이 당할 수 있는 최고의 고통 가운데 시편 22편 1절의 기도문을 암송하신 것입니다. 시편 22편은 환란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도하는 기도문으로 고통으로 시작하지만 찬양으로 끝나는 시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시편 22편을 암송하시면서 “다 이루었다”라고 하시면서 마지막까지 아버지께 찬양을 돌리셨습니다 ♥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