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9.09 오늘의 나눔 | 박승현 | 2025-09-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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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 식탁교제는 의무를 뜻합니다, 우리가 먹는 것은 “우리의 일용한 양식”이지 “나 혼자만의 일용한 양식”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떡을 나누는 것입니다 “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한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자기 떡을 자신만 움켜쥐기 시작하면 바로 그곳에 굶는 사람이 생기는 법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기이한 법입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이야기가 가르쳐주신 교훈에는 이런 뜻이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요? (디트리히 본회퍼 ”성도의 공동생활“ 중에) 누가복음 14장은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고치신 예수님의 행위가 합당한지를 지적하는 바리세인들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자기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살리지 않겠느냐고 반문을 하며 혼인잔치의 비유를 통해 낮은 곳이 아닌 높은 곳에만 앉으려 하는 저들을 비판하자 한 사람이 오늘과 같은 말을 남긴 것입니다, 함께 먹는 사람 중에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 (누가복음 14장 15절) 주님의 식탁 초대는 나 혼자만의 일용한 양식이 아닌 우리의 일용한 양식을 위한 식탁입니다, 높은 곳에 앉아서 내 것만 대접받는 식탁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 앉아 빈자와 병자들을 섬기는 자리입니다, 주님의 식탁은 선택받은 자들만의 특권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열린 은혜의 자리입니다. 그 식탁은 나눔의 자리이며, 섬김의 자리이며, 낮은 자가 높임을 받는 자리입니다. 우리가 그 식탁에 초대받았다는 것은, 단지 나 혼자만의 배부름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의 배고픔을 돌아보라는 부르심입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떼시며 “받아 먹으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라고 하셨을 때, 그 떡은 자기 희생의 상징이었습니다. 우리가 그 떡을 먹는다는 것은, 그 희생에 참여하고, 그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살아간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이 복은 나만의 복이 아니라, 함께 나눌 때 더욱 깊어지는 복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식탁에 우리의 일용한 양식을 가지고 함께 나누기 위해 나아가고 있습니까? 오늘 내 주변에 영육간에 내 양식을 나누고 돌보아야 하는 이들은 누구입니까? 오늘 묵상을 통해 생각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섬기는 모두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기도]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나눔의 식탁으로 우리를 부르심에 감사드립니다. 나만을 위한 양식이 아닌, 함께 나누는 은혜의 자리로 살아가게 하소서.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주변의 필요를 돌아보는 마음을 허락하소서. 낮은 자리에서 섬기며, 주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살아내는 자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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