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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12.19 오늘의 나눔 | 박승현 | 2025-12-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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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이란 찬양에는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주님이 홀로 가신 그 길 나도 따라가오 모든 물과 피를 흘리신 그 길을 나도 가오 험한 산도 나는 괜찮소 바다 끝이라도 나는 괜찮소 죽어가는 저들을 위해 나를 버리길 바라오 아버지 나를 보내주오 나는 달려가겠소 목숨도 아끼지 않겠소 나를 보내주오 이 찬양을 부르며 시편 23편을 묵상할 때, 우리는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합니다. 크리스천은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영적 순례자 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것 만으로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산다고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목자 되신 주님은 분명 우리를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주님이 앞서가신 그 길, 우리가 따라가야 할 '의의 길'에는 때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험한 산, 그리고 바다 끝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선하신 목자께서 왜 우리를 이토록 험한 광야와 골짜기로 이끄시는 것일까요? 첫 번째 잃어버린 생명이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찬양 '사명'의 가사처럼, 주님이 피 흘리며 가신 그 길은 '죽어가는 저들'을 살리기 위한 길이었습니다. 목자가 험한 산을 오르는 이유는 그곳에 길 잃은 양이 울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그 험한 곳으로 부르심은 우리를 고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또 다른 생명을 살리는 존귀한 사명자로 세우시기 위함입니다. 두 번째 주님을 닮은 거룩한 순례자로 빚으시기 위함입니다. 편안한 길은 우리를 안주하게 만들지만, 험한 길은 우리를 단단하게 만듭니다. 바다 끝과 같은 절망의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따를 때, 우리의 인격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다듬어집니다. 고난은 우리 안에 있는 불순물을 제거하고 정금과 같은 믿음을 갖게 하는 하나님의 용광로입니다. 세 번째 부활의 영광은 십자가 뒤에 오기 때문입니다. "목숨도 아끼지 않겠소"라는 고백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올 생명의 역사를 바라보는 믿음입니다. 골짜기를 통과해야만 산 정상에 오를 수 있듯이, 사망의 음침한 십자가의 길(자기 부인)을 통과해야만 주님이 예비하신 승리와 부활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한 알의 밀알처럼 죽어질 때, 많은 영혼을 살려내는 부활의 소망이 열매 맺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너머에는 영원한 '여호와의 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목자 되신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자들을 지팡이와 막대기로 안위하시며 끝까지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전주신광교회 모두 목자되시는 주님을 따르는 영적 순례자가 되기 원합니다, 한 영혼이 회복을 위해 험한 산도 바다 끝도 선한 목자 예수와 함께 동행하며 여호와의 부활과 생명의 집으로 향하는 모두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기도제목] 1. 사명의 자리로 나아가는 용기를 주시옵소서 "주님, 편안한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주님이 마음 두시는 곳, 잃어버린 영혼이 있는 그 험한 산과 골짜기로 나아갈 용기를 주시옵소서. 나의 희생과 섬김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통로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2. 고난 중에도 목자를 신뢰하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고, 상황이 아닌 목자 되신 주님만 바라보게 하시옵소서. 고난의 시간을 통해 나의 믿음을 정금같이 빚으시는 주님의 손길을 신뢰하며, 오늘 하루도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 아래서 참된 평안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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