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야곱 | 이순태 목사 | 2012-04-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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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야곱 말씀 / 창세기 25:19-35:29 I. 속이는 야곱, 험악한 인생 ① 야곱은 이스라엘 12지파를 탄생시킨 조상이다. 그런데 그는 애굽의 바로 앞에서 자신의 삶을 이렇게 묘사한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 47:9). 야곱은 자신의 삶이 나그네 길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세월의 모습이 험악했다고 말한다. 일국의 왕을 대면하는 자리에서 야곱은 자기 인생을 입발린 화려함으로 치장하지 않고, 어두운 그림자로 평가하고 있다. 도대체 그의 인생이 어떠하였길래 그런 고백하였겠는가? ② ‘야곱’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이중적으로 나타난다. 첫째로 야곱이라는 이름은 ‘발꿈치’(아케브)와 관련되어 있다. 창 25:26의 말씀,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 쌍둥이중 동생으로 태어났지만, 야곱은 먼저 세상을 본 형의 발꿈치를 붙잡고 나왔다. 이것은 그의 열망, 끈질김을 보여 준다. 야곱이라는 이름이 지니는 둘째 의미는 ‘속이다, 거짓말하다’ 이다. 예레미아 17:9의 말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여기서 ‘거짓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가 ‘아코브’이다. 창 27:36절에서 에서는 이런 의미로 야곱이라는 이름을 해석한다. “에서가 이르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하지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또 이르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야곱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이루려는 사람이었다. 이러한 그의 삶의 패턴은 그의 마음에 들어 있는 상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③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성에서 돌아다니다가 족장 세겜에게 납치되어 강간을 당한 적이 있다. 그후 야곱의 아들 시므이와 레위가 주동이 되어, 세겜성의 남자들을 모조리 죽이고 자신의 누이동생 디나를 데려 온다. 이 사건을 경험하면서 야곱은 다른 족속들의 보복을 두려워한다. 그런데 그 걱정이 그 일을 벌인 시므이나 레위에게 화가 임하지 않을 것인가가 아니다. 관심은 야곱은 자신뿐이다.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창 34:30). 그런가하면 애굽에 곡식을 사러 갔다가, 시므온이 애굽에 볼모로 잡히고 이제 야곱 곁에 있는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 곡식을 다시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야곱의 아들들이 베냐민을 데리고 가겠다고 하자 야곱은 이렇게 소리친다. “너희가 어찌하여 너희에게 또 다른 아우가 있다고 그 사람에게 말하여 나를 괴롭게 하였느냐” 야곱은 애굽에 잡혀 있는 시므온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야곱은 아들들이 자신을 괴롭히려고 애굽 총리에게 베냐민 이야기를 한 것이라고 아들들을 몰아붙이고 있다. 야곱의 삶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인생이었다. 이런 그의 저변에는 피해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아마 이런 의식은 간발의 차이로 장자권을 놓친 그의 출생과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④ 태어나기 전부터 야곱은 그의 형 에서와 다투었다(창 25:22). 출생 후에도 야곱은 에서의 배고픔을 이용해서 에서로 하여금 장자권을 야곱에게 이양하도록 하였다. 그런가 하면, 눈 어두운 아버지 이삭을 속여 자신이 에서인양 행동해서 장자의 축복을 얻어냈다. 속이는 야곱은 외삼촌 라반과도 오랫동안 갈등관계를 형성하였다. 라반은 속임수를 써서 야곱으로 하여금 아내 레아와 라헬을 위하여 14년을 일하게 만들었다. 그후도 야곱은 가축떼를 모으기 위하여 6년을 더 수고하여야 했는데, 긴 세월 동안 야곱은 갖가지 손실을 감수해야 했고, 수고의 품삯을 열 번이나 받지 못하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야곱에게는 네 여자가 있었다. 그의 아내 레아와 라헬, 그리고 야곱의 첩이 된 빌하와 실바.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태어난 열 두명의 아들들. 이들의 긴장과 갈등 속에서 야곱은 살아야 했다.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하여 하란으로 도망가 사는 20년 동안 가정을 이루고 재물도 축적하였다. 그러나 그곳은 결코 파라다이스는 아니었다. 야곱의 삶에 가득 드리워진 이러한 그림자들, 험악한 세월을 야곱은 어떻게 견디며 살아왔을까?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만남이었다. 사례) H 라는 30대의 젊은 회사원/ ① 처음 그를 보았을 때 그는 매우 우울한 상태였다. 뭔가 잔뜩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는 모습이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얼마전 사장이 사직을 권고했기 때문이다. 똑똑하고 유능해서 초고속 승진을 해 온 그 남자에게는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그는 배신감에 절망하고 분노했다. 그런데 사직을 권고 받은 날 저녁부터 설사를 시작했다.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해 보았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결국 그는 주변의 권유에 의해 심리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와 이야기를 하면서 느낄 수 있는 것은 그의 대인관계가 지나치게 경쟁적이고 공격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매우 영리했지만, 안타깝게도 대인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쉽게 말해서 그는 똑똑했지만, 직장의 트러블 메이커였다. 그는 말한다. “열심히 살았어요. 정말 열심히 일했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맞았어요.” H는 대기업에 수석으로 합격한 유능한 직원이었고, 지금의 사장은 그때 이 사람이 속한 사업부의 팀장이었다. 그런데 이 젊은이의 능력을 눈여겨보던 팀장은 독립해 창업을 하였는데, 이때 H를 스카웃 했다. 새 회사는 빠른 속도로 성장했고, 그 중심에 H가 있었다. 사장은 H를 절대적으로 신임했고, H는 최연소 이사가 되었다. 그는 사장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에 매달렷다. 누군가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다 싶으면 위건 아래건 H의 불같은 공격을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처음에는 사장도 H의 이런 역할을 은근히 즐기고 있었다. 앞에서 대신 채찍을 휘둘러 주니 사장에게 돌아올 불만이 모두 H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애써 뽑아 온 인재들이 하나씩 둘씩 회사를 떠나겠다는 것이다. H하고는 더 이상 일을 못하겠다는 것이다. 사장은 고심하던 끝에 H를 포기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너무 자주 부딪치기에 그대로 놔두었다가는 회사 전체가 심각한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② H는 몇 번 만나면서 자신의 가족사를 상세히 이야기했다. 그는 엄격한 아버지의 둘째 아들로서 자랐다. 6살 때 쯤 할머니가 그에게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에그 세상 구경도 못할 뻔 했는데, 어느새 이렇게 컸구나” 아버지는 어머니가 둘째를 임신한 것을 알고 아이를 지우라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와 할머니의 설득으로 아버지는 마지못해 낳기로 결정을 내렸다. H가 태어난 후에도 아버지는 자신을 닮은 형을 편애했고, H를 별로 귀여워하지 않았다. 전근이 잦았던 아버지는 H를 할머니 집에 맡겨두고 형만 데리고 다녔다. H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무척 애를 썼다. 형보다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공부에 매달려 초, 중, 고 모두 수석을 놓치지 않았다. 후에 그는 결혼도 자신의 뜻보다는 아버지가 원하는 여자와 하였다. 대기업에서 지금의 직장으로 옮겨 올 때도 H는 아버지의 허락을 얻었다. H는 정말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공해야 했고, 이를 위해 자신은 물론, 함께 일하는 동료 직원들을 닦달하였다. 그야말로 H는 공부벌레, 일벌레였다. 그는 항상 ‘성공하지 못하면 나는 끝이다. 아버지는 나를 외면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지니고 살았다. 그런데 H의 실제 현실은 그의 생각과는 달랐다. 아버지는 이미 늙었고, 아버지의 인정을 받을 필요도 없어졌다. 자신은 이미 유능한 사람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은 여전히 아버지의 인정에 대한 갈망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자신에게 엄하고 차갑게 대했던 것처럼 동료 직원들에게도 그렇게 대했다. 아버지를 무서워하고 미워하면서도 결국 그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이었다. 자신은 정작 그러고 싶지 않은데도 말이다. 행복이 그에게 없었다. II. 하나님과의 만남 ① 야곱은 자신을 죽이겠다고 벼르는 형 에서를 피해 아버지의 집을 떠난 하란으로 도망을 쳤다. 그에게는 아무 것도 없었다. 가족도, 재물도 없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놀라운 사건으로 고무되어 있었다. 창 28:10절 이하를 보면, 야곱은 하란으로 향하는 중, 한 곳에 머물러 돌을 베개 삼아 땅바닥에 누워 잠이 들었다. 그가 꿈을 꾸웠는데, 꼭대기가 하늘에 닿은 사닥다리가 보이고, 그 사닥다리를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늘 끝을 보니 야훼 하나님이 서서 야곱에게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창 28:13-15 말씀,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내가 복을 줄 것이다, 너를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 너를 떠나지 않겠다! 하나님의 이 약속을 야곱은 가슴 깊이 새기며 살았다. 그래서 큰 시련, 억울한 일을 닥쳐도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았다. ② 야곱이 외삼촌 밑에서의 생활은 이제 여기까지다 생각하고, 자신의 가족과 종들, 가축들을 이끌고 라반에게서 도망을 쳤다. 3일 후, 이 사실을 알고 라반이 사람들을 이끌고 야곱을 추적하여 만나게 된다. 대뜸 라반은 야곱의 행위가 무례하다고, 어떻게 그렇게 도망을 칠 수가 있느냐고 비난을 하자, 야곱은 그동안 라반이 야곱에게 했던 부당한 일들을 쏟아 논다. 그러면서 창 31:42절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야곱은 참기 어려운 환경에 직면하게 될 때,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계서 형통케 하여 주실 것을 믿었다. 그래서 인간적인 방법으로 항의하지 않고, 참고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여러분, 야비한 사람들과 어려운 환경들이 우리를 좀더 업그레이드시켜 품위 있게 만들 수도 있고, 아니면 우리를 망칠 수도 있다. 그 선택은 바로 우리 자신이 해야 한다. 말 없이 참고 복종했던 그 20년의 세월동안, 하나님은 야곱에게 큰 복을 허락하셨다.
③ 또 야곱은 하나님을 어디서 만나는가? 얍복강 나루터에서! 야곱은 자신을 쫓아온 라반과 헤어져 고향으로 향하는데, 또 하나의 난관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형 에서와의 만남이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외삼촌 집에 가 있는 동안, 에서와 그 자식들은 에돔이라는 강력한 부족을 형성하였다. 그런데 그 에서가 400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야곱에게 온다는 것이다. 이때 야곱은 몹시 두려워하였다(창 32:6). 20년 전, 야곱은 에서인양 행동하면서 장자의 축복을 빼앗았는데, 그로 인해 에서는 야곱을 죽이겠다고 별렀었다. 그런데 그 형을 이제 다시 만나는 것이다. 야곱은 부하들을 이끌고 오는 것은 보복으로 야곱을 죽이고 모든 재물을 빼앗으려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피할 뽀족한 방법이 없었다. 겨우 짜낸 전략은 가족과 가축을 두 떼로 나누는 것이었다. 그래서 앞쪽을 치면, 그 시간에 뒤쪽에 있는 자들은 도망칠 수 있으려니... 그러면 어느 정도는 건질 수 있지 않느냐? 생각이었다. 그리고 맨 앞에서는 가축, 그 뒤에는 두 첩과 그 자식들, 그 뒤에는 레아와 그 가족들, 그 뒤에는 라헬과 그 가족들. 야곱은 맨 뒤로 빠졌다. 그렇게 해도 야곱은 안심이 안되었다. 이제 야곱은 얍복강 나루터에서 그를 찾아온 어떤 낯선 사람의 공격을 받고, 그와 밤을 세워 씨름을 하게 된다. 이 낯선 사람이 누구인가? 호 12:3-4의 말씀, “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과 겨루었다고, 또 천사와 겨루었다! 야곱은 창 32:30절에서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 낯선 사람은 천사의 모습을 한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학자는 예수님이 성육신하기 전에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여간 밤이 깊어가는 동안, 야곱은 자신이 그 불가사의한 상대를 이길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이미 그의 허벅지 관절은 어긋나 다리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이제는 씨름이 아니다. 그냥 야곱은 붙잡고 매달리는 것 외에 할 것이 없었다. 하나님은 한순간에 야곱을 거꾸러뜨리실 수도 있다. 그러나 야곱이 씨름을 멈추고, 항복해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 것이 중요했다. 존 칼빈은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은 왼손으로는 우리와 싸우시고, 오른손으로는 우리 편을 드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고, 하나님이 주고 싶어 하시는 복을 구할 때, 치시던 왼손을 멈추실 것이다. 그 결과 우리의 삶은 주님의 오른손에 붙들려 승리의 역사가 이루어진다. ④ 씨름 후에 야곱에게는 무엇인 남았는가? 첫째로 새로운 약점이 추가되었다. 하나님이 허벅지 관절을 치시어 야곱은 다리를 절게 되었다. 이제 야곱은 에서가 공격을 해도 도망칠 수가 없다. 더 이상 인간적인 계획이나 꾀가 소용이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만났다. 야곱이 가족에게로 돌아갔을 때, 가족들은 야곱에게 물었을 것이다. 아니 왜 그렇게 다리를 절룩이냐고? 그때 야곱은 자신이 하나님의 얼굴을 뵈었던 사실을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씨름후 야곱에게 남은 것은 저는 다리만은 아니었다. 야곱은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다. 예전에 야곱이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네 이름이 무엇이냐?’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형 흉내를 내었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 곧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입니다’(창 27:32) 라고 대답했었다. 그 거짓말은 괴로움으로 그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하나님으로부터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야곱입니다’ 대답 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남의 발뒤꿈치를 붙잡는 사람, 남의 약점을 쳐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 속이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에게 새 이름을 주셨다. “이스라엘!” 그 의미에 대해서 창 32:28절은 이렇게 설명한다.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이제 야곱은 다리를 절며 승리의 면류관을 쓰게 되었다. 하나님께 정복당함으로써 마침내 하나님을 이긴 사람이 되었다. 창 32:31절은 이렇게 증언한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야곱에게 불구가 생겼지만, 또한 새 날이 그에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새날은 바로 우리를 위한 것일 수 있다. III. 하나님의 은혜 ① 워치만 니의 말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다루시기 전까지 우리는 우리 자신을 간교했던 야곱보다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사악함을 직시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곧 야곱의 본질적인 특성이 우리 속에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허무했던 야곱의 삶을 유익한 삶으로 변화시킨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능력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분명 야곱은 교활하고 비열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을 ‘야곱의 하나님’으로 불리도록 계획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이삭과 에서에게 잘못을 저지르고 도망칠 때 벧엘에서 그에게 말씀하셨다(창 28장). 또 야곱이 하란에서 외삼촌 라반에게 억압당하고 착취당할 때에도 그에게 말씀하셨다(창 31:10-13). 하나님은 야곱이 형 에서를 만나기 전 브니엘에서 그와 씨름을 하시고 했다(창 32장). 그리고 후에 벧엘에 다시 나타나셔서 야곱을 축복하셨다(창 35:9-15, 생육하고 번성하라,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땅을 주리라). 또 야곱이 가솔을 이끌고 애굽으로 향하는 중 브엘세바에 나타나셔서 야곱에게 말씀하셨다(창 46:1-4). 그는 열두 지파의 조상, 그들을 통해서 구세주가 세상에 오셨다. ② 야곱은 도망자로 인생을 시작했다. 그리고 20년 동안 나그네로 살아야 했다. 그리고 이제는 본향을 향하는 순례자가 되었다. 그의 마지막에 대해 히브리서 11:21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그의 험난한 세월이 마무리 되었다. 그는 나그네 인생길의 모본이다. 그는 성인도, 영웅도 아니다. 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욕심 많고, 시기심 많고, 지기 싫어하고 약삭빠른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만나주셨고, 그를 통해서 위대한 구원을 계획하셨다. 그가 늙고 기력이 쇠하여졌을 때, 자식들을 축복한 후, 일어서기 힘든 다리에 힘을 주어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하나님께 경배한 후, 나그네 삶을 마무리 하였다. 주님, 다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해피 엔딩! 우리가 부족해도 주님은 우리를 떠나시지 않는다.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 주님과 함께 하면 삶을 마무리 하는 인생으로 사시길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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