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모세 | 이순태 목사 | 2012-06-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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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모 세 말씀 : 출애굽기-신명기 I. 걷는 인생 ① 언젠가 베르나르 올리비에 라는 고집쟁이의 책을 접한 적이 있다. 책 제목이 무척 도발적이다. “나는 걷는다.” 그는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중국의 시안에 이르는 1만 2천 킬로미터의 실크로드를 걸었다. 무모한 열정이었다. 그것도 60세를 넘긴 나이에 말이다. 그가 직면했던 어려움은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육체적 고통, 강도, 강도와 다를 바 없던 군인들, 질병, 외로움, 그리고 포기하고 싶은 유혹... 도대체 무엇이 그를 그런 극한 상황으로 몰아갔을까? 아니 어떤 그리움이 그를 그 길로 불렀을까?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인생의 세 번째 시기에 나는 느림과 침묵에 굶주려 있었다.” 가슴에 저며 오는 말이다. 목사로 살면서 참 어려운 것은 채 무르익지도, 고이지도 않은 말들을 퍼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때로는 침묵이 웅변보다 더 많은 것을 전달하는 줄 알면서도 침묵을 선택하지 못하는 현실 때문에 안타깝기도 하다. 안으로 자기를 들여다보기 보다는 밖으로 향하도록 훈련받은 시선을 안으로 되돌리기가 참으로 어려울 때도 있다. ② 그런 상황에서 40년간 이스라엘 지도자로서 광야 생활을 했던 모세의 모습이 더욱 위대해 보인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 중 모세가 한 말은 성경의 다른 어떤 저자나 화자의 것보다 많다. 흔히 모세 오경이라 불리는 성경의 첫 다섯 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계시의 초석이 된다. 유대 전통에 의하면, 모세 오경 이후에 나온 모든 책들은 모세가 한 말에 대한 주석이거나 부연 설명으로 간주될 정도이다. 누가 그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양치기가 출애굽의 지도자가 되었다. 나 말 못한다고 손사래를 치던 그가 신명기에 볼 수 있듯이, 모압 평지에서 말을 폭포수처럼 쏟아내고 있다. 이런 모세에 대해 신 34:10-12절은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린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이더라”
II. 모세의 프로필 ① 우리가 모세에 대해 아는 바는 그리 많지 않다. 분명한 것은 처음 그는 애굽사회에서 노예 출신(레위 지파)이라는 것이다. 그는 태어난 후, 석달 동안 숨겨 양육되었다(당시 바로는 히브리인 남자 아기를 태어나는 즉시 죽이라는 명령은 내린 상황). 그후 파피루스 가득한 강에다 갈대상자 속에 담겨져 버려졌지만, 극적으로 구조되어 애굽 공주에게 입양되어 40년간 바로 왕궁에서 살았다. 그런데 마침 그를 양육하던 자가 그의 생모였고, 그로 인해 자신의 출생이 히브리인임을 알게 된다. 마흔살에 히브리 노예를 때리는 애굽 감독을 죽이고, 후에 이것이 발각되어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쳤다. 거기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역할을 자처한 것이 계기가 되어, 르우엘의 딸 십보라와 결혼하였고, 40년간 양치는 목자로 살았다. 이상이 80세까지 모세의 이력이다. ② 그런데 지도력에 관한한 그는 전혀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었다. 파편적으로 의협심을 발휘하는 면이 가끔 있긴 하지만, 사람들을 이끄는데 있어서는 자신감이 부족했다. 하나님께서 불타는 떨기나무로 모세의 주의를 이끄셨을 때, 그는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했다. 어떻게 연약한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타지 않을까? 그것을 계기로 하나님은 모세에게 출애굽의 사명을 맡긴다.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출 3:6) ‘스스로 있는 자’(출 3:14) ‘히브리인의 하나님’(출 3:18)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애굽의 노예로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 청사진을 제시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과 모세 사이에는 지루한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명령에 모세는 계속 뒷걸음질을 치는 것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내 백성을 구하게 하겠다’ ‘제가 누구라고 그런 일을 하겠습니까? 그들이 뭘 믿고 제 말을 듣겠습니까?’/ ‘스스로 있는 자, 조상의 하나님이 너를 보낸다고 말해 주어라’ ‘그들이 제 말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네가 지나고 다니는 지팡이로 표적을 보여 주어라’ / ‘하지만 저는 본래부터 말을 잘 못합니다.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합니다’ ‘누가 그 입 만들었느냐? 나 여호와다.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 주겠다’/ ‘그래도 저는 아닙니다. 보낼 만한 다른 사람 보내십시오’ / 그러자 하나님이 화를 내시면서 ‘말 잘하는 네 형 아론 있지 않느냐? 이미 나는 그로 하여금 너를 돕도록 하였어!’ ··· 물러서다 물러서다 안되어 모세는 하나님의 사명을 떠맡게 되었다. 여러분! 출애굽이라는 엄청난 사명 앞에서, 정말 강한 지도력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모세보다 더 안 어울리는 사람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꾸물거리고, 우유부단하고, 마지못해하는 이 사람에게 구원의 사역을 어떻게 맡길 수 있을까? 말꼬리 잡고, 변명 잘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 어떻게 중대한 일을 맡길 수 있을까? 이런 점에서 모세는 우리가 애써 따라 잡아야 하는, 우리보다 한수 위에 있는 본보기는 아니다. 그 역시 우리와 똑같이 흠 많고, 겁 많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모세를 택하시고 강권하셔서 출애굽이라는 놀라운 사명을 감당케 하셨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달리 표현하면, 어떻게 하면 평범한 우리도 하나님의 위대한 사명에 동참하는 일꾼으로 쓰임 받을 수 있을까? III. 모세의 결함 1) 분노 통제 어려움 ① 모세의 길을 추적해보면,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음을 보게 된다. 그가 40세가 되었을 때, 노예 신세로 힘든 일을 하는 동족들을 보러 가다가 애굽 감독 하나가 히브리 노예를 때리는 것을 보았다. 순간 울컥하는 마음에 그 감독을 살해하고 모래 속에 묻어 버렸다. 모세가 애굽 사람을 죽인 동기는 노예들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분노를 통제하지 못하고 폭력을 사용함으로써, 결국엔 줄행랑을 쳐야 했다. ② 어디 그뿐인가? 출애굽 이후, 광야를 지나가는 중,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을 달라고 아우성을 친 적이 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모세더러, “특정한 바위에게 ‘물을 내라’고 명하라. 그러면 바위가 물을 낼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백성들의 요구가 반항적이고 건방지다고 느낀 모세는 그들에게 엄하게 설교를 한 후,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외치면서 홧김에 지팡이로 바위를 세게 쳤다. 바위에게 ‘물을 내라’ 하면 되는 것인데, 모세는 자기 분을 이기지 못해 지팡이를 사용한 것이다. 이 일로 인해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였고, 결국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2) 일에 압도 당함 또한 모세는 자기 앞에 던져진 문제에 압도당해 힘들어 하기도 하였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 중 몇몇이 모세에게 와서 만나 말고 다른 음식을 달라도 요구하였다. ‘애굽에서는 값없이 생선, 오이, 참외, 부추, 파, 마늘을 먹었는데, 어떻게 여기는 만나 밖에 없습니까?’(민 11:5). 얼마 전에 홍해를 건넌 경험, 불타는 듯한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던 경험을 한 자들이 이제는 먹을 것을 가지고 불평을 하고 있었다. 모세는 견디기가 힘들었다. 어떤 백성들은 직접 모세를 만나지는 않고, 그냥 자기 장막문에서 우는 것이었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모세는 견딜 수가 없어서 외쳤다. ‘하나님,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민 11:14). 그리고 이렇게 구했다. “나에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당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민 11:15). 더 이상 하나님의 일 감당할 여력 없으니 죽여주십시오! 3) 말 더듬이 미드라쉬에 의하면, 모세는 총명한 꼬마여서 왕궁에서 가장 사랑받는 아이였다. 바로 또한 모세를 무릎에 앉히기를 좋아했고, 모세는 바로의 왕관을 가져다가 자기 머리에 써보기를 좋아했다. 이러한 행동은 애굽의 점쟁이들을 불편하게 했다. 그들은 모세가 자라서 바로의 왕위를 빼앗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한 현자가 한 가지 시험을 제안했다. 모세 앞에 2개의 쟁반을 두게 해서 한 쟁반 위에는 금이 있고, 다른 쟁반에는 밝게 타는 석탄이 놓았다. 모세가 석탄을 잡으려고 하면, 그가 그저 밝게 빛나는 물건에 끌린 것이지만, 금을 잡으려고 손을 뻗으면 그것은 분명히 위험 신호라는 것이다. 모세가 금을 막 잡으려고 하는데, 천사가 그의 손을 석탄 쪽으로 향하게 했다. 모세는 타고 있는 석탄을 만졌으며, 너무 아파 손가락을 혀로 가져가는 바람에 혀를 다치게 되었다. 이렇게 상처를 입은 모세는 단어를 정확히 발음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다. 이 미드라쉬 이야기는 모세가 바로의 궁정에서 이방인처럼 느끼며 성장했음을 보여 준다. 이것이 아마 언어장애가 생기는데 일조를 했을 것이다. 언어장애는 그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것이 그에게는 사람들 앞에서 서는데 큰 두려움으로 남게 되었다. ※ 외모 열등감 우리 사회는 예쁘고 날씬한 사람들을 너무 좋아한다. 그래서 얼짱, 몸짱들은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 그런만큼 사람들이 열등감을 느끼게 되는 가장 일반적인 원인이 외모에 대한 것이다. 코에 대한 열등감으로 괴로운 여성! 남들은 모르는 그녀만의 괴로움이 있었다. 그것은 코가 예쁜 여자만 보면 기가 죽는 것이다. 그 여성은 코 이야기만 나오면 신경질부터 부린다. 나름대로 누구 못지 않게 공부도 한 지적인 여성이지만, 코 문제만큼은 이성적일 수 없었다. 사람을 만날 때도 되도록 거리를 두고 앉았다. 남편도 코 때문에 자기를 무시하는 것 같았다. 어느날 남편이 TV에서 한 탤런트를 보고, ‘야, 참 예쁘다’ 라고 감탄을 했는데, 이 여자는 갑자기 화가 났다. “그 소리 나 들으라는 소리지! 그렇게 좋으면 그 여자랑 살아요” 한바탕 부부싸움을 하고 나니 기분이 참 비참해진다. 그러다가 그 여자는 성형수술을 하였다. 수술 후, 반창코를 떼고 거울을 보는 순간 충격을 받았다. 어느 낯선, 정체 불명의 코가 그녀 얼굴에 앉아 잇는 것이었다. 영 어색. 그런데 상태를 더욱 어렵게 만든 것은 그녀의 남편이었다. 그녀의 코를 본 순간, 남편은 어색하게 웃으면서서 ‘괜찮네’ 그러는 것. 그러나 그것은 그녀가 원하는 반응이 아니었다. “참 예쁘다!” 이 소리가 나와야 하는데.... 괜찮네! 남편의 시큰둥한 반응에 자기 코수술이 잘못되었다고 생각을 했다. 원상복구하고 싶지만, 재수술을 할 수는 없었다. 후에 그 여학생은 집안의 거울을 다 없애 버렸다. 밖에 나갈 때는 검은 선글라스에 마스크를 쓰고 다녔고, 마트에 쇼핑하러 갈 때도 바닥만 보고 다녔다. 나중에는 그것 때문에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심리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그녀가 자기 코를 부끄러워하고 제거하고 싶었던 이유중 하나는 자기 코가 어머니의 코와 닮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한 번도 어머니에게서 위로나 칭찬을 받아본 기억이 없었다. 어머니는 매사에 빈정거리거나 조롱하는 말투였는데, 그 어머니의 모습이 자신에게 잇다는 사실이 무의식적으로 괴로운 것이었다. 그런데 외모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남의 거울에 비친 모습을 나 자신으로 착각하지 말라. 세상에는 다양한 거울이 있다. 깨진 거울도 있고, 찌그러진 거울도 있다. 더러워진 거울도 있다. 이런 거울들은 내 모습을 제대로 보여 줄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어릴 때 우리에게는 아버지 거울, 어머니 거울, 선생님 거울, 친구 거울 등 다양한 거울들이 있었다. 어릴 때는 비판능력이 없어 그 깨진 거울의 특성을 알지 못하고 거기에 비친 모습이 내 모습이려니 생각했다. 그래서 자기 모습을 보고 위축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깨진 거울에 비친 여러분의 모습만 보지 말고, 그 거울이 어떤 거울인지 평가해 보아야 한다. IV,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을 통제하지 못하는 성격적인 약점, 백성들의 불평과 비난에 자주 좌절하는 모세가 어떻게 그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었을까? 1) 첫째로, 모세는 하나님과 지속적으로 만났다. 시내산에서 우레와 번개, 나팔소리와 연기가 자욱하자,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그래서 모세에게 간청을 했다. “하나님이 직접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대신 모세,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듣고 우리에게 말씀해주십시오” 이에 대해 모세는 출 20:20절에서 이렇게 말씀한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면서 곧이어 출 20:21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백성은 멀리 서 있고 모세는 하나님이 계신 흑암으로 가까이 가니라” 모세는 하나님 외에 아무도 없는 그곳으로 들어간 것이다. 하나님과 홀로 만나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이에 대해 출 33:11절은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 하셨다고 기술하고 있으며, 출 33:17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안다’라고 말씀하신다. 즉 단순히 겉모양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하나님과 모세는 만남을 가진 것이다. 2) 둘째로,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했다. ① 출 33:18절에서 모세는 하나님께 간청을 한다.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하나님은 친구처럼 모세와 말씀하셨고, 모세가 하나님을 친밀히 대할 수 있도록 배려하셨다. 그래도 모세는 주님의 영광을 더 많이 접하고 싶었다. 특별히 출 32장에서 백성들이 금송아지 만들어 놓고 거기에 절하고 춤을 모습을 보면서, 모세는 더욱 주님의 영광 속에 있기를 바랬다. 그런데 모세의 간구에 하나님의 응답은? 19절 하반부,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신 것이다. 내가 알아서 은혜 베풀고, 내가 알아서 긍휼을 베풀 것이다. 그것은 나의 소관이다. 왜 이런 말씀? 아무리 네가 나와 친해도 넘어설 수 없는 신비가 있어! 그러나 네가 그렇게 영광을 사모하니 23절 뭐라고?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모세가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한 것은 아마 그의 어머니의 영향도 한몫 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모세의 생모 이름은 ‘요게벳,’ 그 이름은 ‘여호와는 영광이시다’라는 뜻이다. 어머니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모세는 ‘여호와는 영광이시다’는 사실을 기억했을 것이다. 이처럼 모세는 하나님을 가까이 했다. 그분의 영광을 사모했다. 그 결과 출 34:29절을 보면, 십계명을 새긴 돌판을 들고 있던 모세의 얼굴에는 광채가 났다. 하나님의 빛 가운데 들어서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는 거울이 된다. 그래서 광채가 난다. 모세는 그 광채가 눈부셔서 수건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울 정도였다. 모세의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 향해 걷는 길이었다. 부족한 것 적지 않았지만 그래도 모세는 그 끈을 결코 놓지 않았다. ② 그런데 모세의 마지막은 어떠했는가? 신명기에서 모세는 출애굽 제 2세대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어떻게 땅을 정복하며, 어떻게 땅에서 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지를 알려 주었다. 그리곤 백성들을 축복하면서, 백성들이 보는 동안 진영을 떠나 모세는 느보 산으로 올라갔다. 그 이후 아무도 다시는 모세를 보지 못했다. 송별잔치도, 감사의 선물도 없었다. 40년간 그의 업적을 기리는 글도 없었다. 그는 느보산 위에서, 요단강 건너편 펼쳐지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 죽었다. 하나님은 그의 시신을 아무도 찾을 수 없는 무덤에 묻으셨다. 오늘날 온 세계에 방영되는 위대한 지도자들의 죽음과는 전혀 다른 죽음이었다. 인간적으로 참 애석하다. 그래도 40년간 광야생활 한 것은 가나안땅이라는 목표가 있어서인데, 그것을 앞두고 죽었다. 어떤 사람은 이런 모습을 보면서 불평을 할지 모른다. “그렇게 못한다 안한다 했는데, 억지로 지도자를 시켜 40년간을 고생하게 하다가, 가나안땅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다니···”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는 마태 17장 1절 이하에서 모세의 모습을 다시금 보게 된다.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변화산상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더불어 이야기 하는 것을 보게 된다. 모세는 어두운 흙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그토록 사모했던 하나님의 영광 속에 거하고 있었던 것이다. V. 후기 모세의 변화/ somebody(왕궁의 40년) - nobody(목동생활 40년) - God's buddy(부름받은 40년)! 우리도 모세처럼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해 가장 좋은 것 내놓고도 고난과 실패처럼 보이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당연히 받아야 할 칭찬이나 보상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불평하지 말라. 영광 중에 계신 주님을 만날 때, 정확한 회계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때까지 하나님과 친밀히 만나고,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며 힘과 위로를 받으라! 일이 너무 어렵게 보이는가? 사람 다루기가 어려운가? 모세가 했던 것처럼 하라! 주님의 영광을 생각하며 난관을 이겨내라! 모세는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산으로 올라가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께 나아가 영광스러운 영적 교제를 경험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동안, 우리의 마음은 뜨거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닮아가게 될 것이다! 주님과 자주 만나면, 모세처럼 저와 여러분의 얼굴에서도 광채가 날 것이다! 모세는 애굽에서 사는 동안 애굽의 막강한 권력과 위용을 보았다. 그러나 그런 것들에 결코 붙잡히지 않았다. 그는 애굽의 덧없는 영광을 버리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 영광 속으로 들어갔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의 영광은 들에 피는 꽃처럼, 잠시 후면 사라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은 영원하다. 그 영원한 영광 속으로 저와 여러분 모두가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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